미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K-POP 보이그룹 혹은 걸그룹이 ‘진출’ 이상의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일부 매니아 층의 예외적인 열광이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시선을 맞받아 칠 수 있게 된 것도 그렇다.
그 중에서도 걸그룹은 좀 더 시간이 걸린 편이지만, 최근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지금
가장 좋은 예는 블랙핑크일 것이다.
올해 2월의 미국 TV 데뷔 시점에서 ‘Kill This Love’와 코첼라 무대의 성공으로 이어진 속도는 기대를 넘어선다.
심야 TV 쇼의 음악 무대에 서는 것은 예상 가능한 시작일 수 있다.
그 시작도 2012년의 소녀시대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 이미 몇 가지 차이가 보인다.
블랙핑크는 작년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본격적인 진출 준비를 해왔다.
미국시장 내 첫 공연은 유니버설 뮤직이 개최하는 쇼케이스 이벤트였다.
이들은 이미 ‘뚜두뚜두’를 ‘핫 100’ 55위에 올려 놓은 경험이 있었다.
K-POP 걸그룹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올해 2월 첫 TV 출연 이전에 이미 ‘2019 In Your Area' 투어를 발표했고, 새 EP 발매도 예정된 상태였다.
활동을 본격화하는 시점에 빌보드 커버가 나왔다.
4월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도 연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자리를 잡고, GOT7, EXO, MONSTA X 등이 인기를 얻는 과정에 최소한 2년이 걸렸다면,
블랙핑크는 이 모든 과정을 두 달 안에 밟아 나가고 싶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달리 말하면 ‘Kill This Love’의 성공과 블랙핑크에 쏟아진 관심은 일정한 계획과 기대에 따라 완성된 이벤트와 같다.
중요한 것은 ‘계획’과 ‘기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7년 전 소녀시대가 ‘The Boys’를 1,000장 판매하고 만족해야 했던 것과 달리,
소셜미디어는 대중과 아티스트의 접점을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확장시켰다.
유튜브와 스트리밍은 기존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도 음악을 노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블랙핑크가 미국에서 전혀 공연을 한 적이 없으면서도 투어를 발표할 수 있는 이유다.
라틴계열 음악의 부상 이후
미국, 영어 이외의 지역, 언어를 배경으로 하는 음악에 대한 수용 가능성이 크게 열린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K-POP은 방탄소년단이라는 확고한 성공 사례를 가지고 있고,
유니버설 같은 대형 레이블, 잠재적인 파트너가 될 다른 아티스트, 그 외 미디어에게 매력적인 관심사다.
대부분의 K-POP 걸그룹이 한국 혹은 아시아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먼 존재라면,
블랙핑크는 미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그것도 영리하게 공략하는 팀이 되었다.
미디어가 그들에게서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이었던 2NE1을 발견하든,
피프스 하모니의 활동 중단 이후 공백을 메울 존재를 찾아내든,
현대화된 스파이스 걸스 정도로 쉬운 이해를 쫓든, 결론은 같다.
소셜 미디어와 공연 행사를 뜨겁게 만들 수 있는 존재라면,
어떤 식으로라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결과 블랙핑크는 K-POP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운 시점에 미국 시장에 등장한 걸그룹이 되었다.
'Kill This Love'는 공개 당시 뮤직비디오 중 첫 24시간 최다 조회수 5천 7백만 회를 기록했다.
코첼라 무대는 유튜브로 생중계되어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다.
페스티벌 무대는 단독 공연보다 압축적이기 때문에 블랙핑크의 다소 제한적인 레퍼토리가 약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최대치를 성실하게 보여준 셈이 되었고, 실제로 투어 공연보다 평이 좋았다.
‘Kill This Love’는 빌보드차트 ‘핫 100’ 41위로 데뷔하면서 다시 한 번 걸그룹 최고 기록을 만들었다.
급격한 부상 다음은 무엇일까?
이제 블랙핑크도 미국에 진출한 모든 K-POP 그룹의 고민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트리밍 성적에 있어서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유튜브가 아닌 유료 시장에서 반응을 얻어야 한다.
‘핫 100’ 차트에서 일정한 벽을 넘기 위해서는 라디오 순위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답을 낸 적이 없는 질문이다.
K-POP 보이 그룹이 미국 대중문화의 소년-남성 이분법 사이에서 자기만의 틈새를 만들어냈던 것에 비하면,
걸그룹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은 한결 적다.
하지만 카디B(카디비)와 니키 미나즈,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리아나 그란데 사이에서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블랙핑크가 전에 없던 답을 낼 수 있을까?
아이즈 ize 글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링크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5&aid=000000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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